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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가에서 메모한 2026년 6월의 문장들입니다.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을 사진으로 찍어 텍스트로 변환하고 메모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 한겨레 .txt - 작자 미상
가끔 아내와 산책할 때 서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다시 서울 가고 싶어? 내가 그렇게 물으면 아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답했다. 당신은, 당신은 어떤데? 아내가 그렇게 되물으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가끔 서울이 그립기도 했다. 교보문고에서 웅크린 채 책을 읽었던 평일 오후가, 거기에서 나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커피를 마시던 여름밤이, 그때 그 막막함이, 때때로 떠오르기도 했다.
메모: 한겨레 .txt 2026.05.29 이기호 작가의 글 중에서 나온 교보문고 이야기는 나의 20대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해서 한참 추억에 잠겼다.
📖 무게 - 리즈무어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바깥 세상으로 내다보았다. 거리는 조용했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로 된 바깥문을 열고 계단으로 나갔다. 차 한 대가 오더니 주차할 곳을 찾았다. 그걸 보고 잠깐 긴장하고 흥분했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은 그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꼼짝도 않고 서서 두 팔로 내 몸을 안았다.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메모: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삶에 빠져들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버릴 것 같으면서도 결국 그것을 이겨낼 거라는 희망은 헛되지 않다. 페이지: p.396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페이지: p.110
📖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정지우
나는 오래 전부터 글 쓰는 사람들의 동료의식 혹은 먼 우정, 아니면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라는 것을 믿어왔다. 글 쓰는 사람들은 새벽의 책상 앞이나 오후의 어느 구석진 벤치에 앉아, 혹은 만원 지하철의 사람들 틈새에 끼어 서서 저마다의 백지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언뜻 고독해 보이고, 홀로 작은 세계를 마주하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백지가 이 세계 전체와, 특히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과 이어져 있다. 페이지: p.9
📖 1938 타이완 여행기 - 양솽쯔
자이역에서 출발해 아리산역으로 이어지는 이 삼림 철도 노선의 창밖 풍경은 멀리까지 알려져 있었다. 아리산역은 해발 이천 미터가 넘는 산꼭대기에 있었으니까!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을 상상해보자. 기차 한 대가 안개를 헤치며 나오더니 길고 긴 기적 소리를 낸다. 심금을 울리는 듯한 소리다. 기차의 바퀴는 철로를 단단히 물고, 반드시 올라가고 말겠다는 강철 같은 의지로 조금씩 높은 산에 오른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장면이다. 안개가 흩어지는 순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 끝 구름과 안개 사이로 높고도 곧게 뻗은 신목(神木)이 줄지어 철로를 감싸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세. 꽃 피는 계절이면, 벚꽃이 양옆에 가득하다.
메모: 타이완에 가고 싶어졌다. 페이지: p.133
📖 경향신문 - 김재인
한편, AI가 미래 세대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최근 엄청난 분량의 연구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모든 연구는 일관되게 한 방향을 가리킨다. AI의 도움은 학생들이 인지 활동을 손 놓게 만든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은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 미래 세대는 인류의 유산을 소화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나는 이를 ‘디스킬 제너레이션(deskill generation)’, 즉 탈숙련 세대의 출현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 미래 세대의 인지 역량과 관련해서도, AI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역량(가령 프롬프트 능력)이 생겨날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그러나 읽고 쓰는 문자력은 인간이라는 능력 자체이다. 즉,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기능하기 위한 가장 바탕의 실력이 문자력이다. 문자력이 저하되면 인류는 과거 유산을 계승하지 못하게 된다.
메모: 출처 기사 링크
📖 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도서관은 이상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지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저장되어 기억되고 삶을 되찾는 장소, 종이가 가득한 상자에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곳이다.
메모: 도서관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동시에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곳. 얼마나 멋진 말인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온갖 상상 속의 일들도 차곡차곡 담겨 있다.
💭 후기
이번 달은 총 7개의 문장을 7권의 책/출처에서 메모했습니다.
6월의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니 '여행’과 '현재’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이 우리를 오직 현재에 머물게 한다고 말하고,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안개 낀 아리산 철도 풍경은 그대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겨레 .txt에서 만난 교보문고와 세종문화회관 계단의 밀크커피 이야기처럼, 지나간 20대의 서울을 오래 추억하기도 했습니다.
읽고 쓰는 일에 대한 문장도 마음에 남습니다. 정지우 작가가 말한 글 쓰는 사람들의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 그리고 리베카 솔닛이 도서관을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곳"이라 표현한 문장이 특히 그렇습니다. AI 시대에 문자력이 곧 인간의 바탕 실력이라던 경향신문의 진단과 겹쳐 읽으니, 결국 읽고 쓰는 일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월에도 좋은 문장들과 함께, 자주 걷고 자주 읽는 날들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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